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던 시기를 떠올려본다. 그는 특검과 검찰의 직접 질문에 응하지 않았고, 헌재의 최종 변론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 국회, 재판부의 질문을 모두 회피한 셈이다.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 교수는 칼럼에서 왜 사람이 질문과 답변을 회피하는지를 설명한다. 말하는 행위는 곧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드러내고, 답변은 맞고 틀림, 잘잘못의 판정 속에서 나를 드러낸다. 그래서 인간은 질문도, 답변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조차 하나의 답변으로서 결국 판단을 피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읽으며 회의 시간이 떠올랐다. 대표님이 이해했는지 묻는 순간, 아무도 먼저 입을 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질문받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불편하다. 말하는 순간 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문을 멈출 수는 없다.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르는 상태에 머물게 되고, 답하지 않으면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어쩌면 말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동욱의 파피루스] 대통령은 왜 질문받는 것을 싫어할까’ 칼럼을 읽고 요약하고 단상을 덧붙임.
(https://m.seoul.co.kr/news/editOpinion/column/seo_papyrus/2017/02/25/20170225022002?cp=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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