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일 전 출근길, 길을 걷던 초등학생을 보았다. 갑자기 아이 뒤에서 자전거가 나타나 따르릉 벨을 울렸다. 소리를 들은 아이가 길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는 찰나, 아뿔사. 자전거도 같은 방향으로 사선 주행을 하는 바람에 둘이 부딪히고 말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당연히 자전거 운전자가 사과할 줄 알았다. 아이가 등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남자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 잘못이라는 태도였다. 벨만 울리면 장땡인가? 뒤에서 걷는 아이를 봤으면 본인이 더 조심해서 피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나는 그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 이틀 전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사람 앞에 서게 되었다. 빈 자리가 그곳뿐이었지만, 꼬고 있는 다리 때문에 설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허공에 뜬 신발 끝이 내 옷에 닿을까 봐 내내 신경이 쓰였다. 사람이 밀집한 공공장소에서 굳이 저렇게 배려 없이 앉아야만 할까? 나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3. 어제는 만원 버스 안이었다. 좌석에 앉아 가는데 내 앞에 선 여자가 ‘옥동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그녀는 비닐을 뜯더니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아침 혼잡 통근길 버스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내 눈앞의 장면이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놀라움은 곧 두려움이 되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내 옷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지, 뒤에서 밀치는 사람 때문에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놓치지는 않을지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인가.
매일 출퇴근길에 이런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과장 없이 하루에 한두 명은 꼭 마주친다. 세상은 이들을 ‘빌런’이라 부르지만, 내게 그건 너무 순한 호칭이다. 나는 이들을 ‘구타유발자들’이라 명명하겠다. 이들은 매일 어디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구해오는 건지 볼 때마다 놀랍다. 그럴 때면 뒤통수를 확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하겠다고 손잡이도 안 잡고 가다 내 발을 밟은 이에게는 마음속으로 독침을 쏘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이내 발 좀 밟혔다고 목숨까지 가져가는 건 과한가, 싶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보통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용서다. 예수의 마음으로 그 사람의 뒷통수를 치고 싶을 때 내 뒷통수를 치고 마는 것이다. ‘저 사람도 사정이 있을거야.’하며 최대한 사황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거나, ‘나도 누군가에게는 구타유발자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하지만 감정은 즉각적이다. 이성이 아무리 설득해도 가슴에 남은 찌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내가 성인군자는커녕 그릇이 참 작은 소(小)시민임을 깨닫는다.
두 번째는 분노 표출이다. 다리를 펴라고 당당히 말하고,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에게는 ‘먹지마!’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정당한 항의도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보복이 따를지 몰라 주저하게 된다. 무엇보다 분노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몰상식한 이들과 싸우며 한정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 소중한 에너지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 하니까.
세 번째는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회피’다. 못 본 척, 없는 척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이다. 당장은 마음이 편하지만 만원 지하철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땐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결국 누군가는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찝찝함이 남는다. 나의 감정은 언제나 ‘분노→용서→용서 못 해→ 회피→ 다시 분노’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한다.
이제 네 번째,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려 한다. 바로 글쓰기다. 이 미친 존재들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내 감정은 널을 뛰겠지만, 적어도 ‘글감 하나는 제대로 건졌네’라며 알차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번에 구타유발자들을 소재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이 나타나자 내심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구타유발자들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소모적인 분노 대신, 그들을 알뜰하게 문장으로 엮어보려 한다. 공짜로 얻은 소중한 글감이니, 화내면 나만 손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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