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감 : 고장이 났거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계속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아직 가지고 있는 이유는요?
내 발 밑에 있는 축구공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용도에 맞게 쓰이지 못한 채 반쯤 바람이 빠져 발받침대로 사용 중인 이 축구공 말이다.
공을 차고 싶었다. 딱 그 이유 하나였다.
그래서 여성 풋살 클럽에 가입했다.
운동신경 0에 근육도 없고 스포츠는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풋살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놀라워했다.
특히 중학교 때부터 유럽 축구 클럽을 다 꿰차고 있는 축구 광팬인 친구가 있는데, 나를 보고 축구 경기도 안 보는 애가 어떻게 시작했냐고, 정말 사람 일은 모른다며 신기해했다. 그러면 나는 그냥 공 차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대충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정작 경기에서 공을 많이 못 찼다.
저질 체력 때문이었다.
1시간 준비 운동하고 1시간 게임을 뛰는 일정이었는데,
나는 준비 운동만 끝나도 기진맥진해서 실제 게임에서는 제대로 뛰지를 못했다… 이 몹쓸 체력.
그래서 헬스클럽에 갔다.
슬램덩크에서 안 감독님께 “농구가 다시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정대만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울면서 헬스 강사님께 말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어요”
헬스 강사님은 깔깔깔 웃으면서 나보고 정말 축구에 필요한 근력이 거의 없다고 놀라워하셨다.
그 뒤로 공을 차겠다는 일념하에 앞다리, 뒷다리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열심히 배웠다. 러닝머신 위를 달릴 때는 숨이 턱 막혀서 그만 달리고 싶었지만 상대편보다 공을 먼저 잡는 장면을 떠올리며 억지로 발을 떼었다.
누가 보면 네가 선수냐 하고 우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내색하지 않았다.
잘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왠지 민망했다.
그 후 골도 넣을 정도로 성장할 무렵
경기를 뛰다가 다쳐서 쉬게 되었고,
그사이 FC 클럽도 공중분해되면서 덩그러니 축구공과 내가 남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공 차는 것뿐만 아니라, 몸개그처럼 보일까 걱정되던 연습 과정까지도 다 좋아했던 것 같다. 격렬한 몸싸움도 평소에는 해볼 일이 없어서 나름 재밌었다.
정말 좋아한 게 맞는데,
나는 잘 못하니까,
걔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니까
좋아한 마음을 숨겼던 것 같다.
지금은 발받침대가 되어버린 축구공이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봄이면 고장 난 공기 주입기는 버리고 새로 하나 사야지. 그리고 운동장에서 뻥뻥 차야겠다.
2일차 글쓰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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