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디자인/장수생 탈출기

우울은 나의 힘_5년 장수생의 취업 성공 스토리

우주기획 2025. 3. 20. 21:32

이전에 팟캐스트에서 풀었던 암흑기를 글로 다시 써본다

 

 

1. 장수생이 되어가는 5년의 과정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 법원직 시험을 준비했었다. 과목 수가 많아 좀 더 어려운 법원직을 골랐던 건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10개월은 정말 열심 공부했다. 순공부시간 10시간, 14시간씩 했었는데, 그렇게 하니깐 몇 달 안가서 허리디스크가 생겼다. 5분도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누워서 공부를 하다가 점차 공부를 손에 놓게되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병든다고,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아직 1년차니깐 괜찮겠지, 내년에 합격하면 되지, 이런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합리화해서 2년차가 되었고, 2년차가 되서도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초반에만 열심히 달리고 시험에 가까워질수록 공부를 손에 놓게 되었다. 내가 압박감에 약하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 때에는 잘 몰랐다. 3년이 지나고, 행정직으로 돌렸는데, 행정직에 뜻이 없으니깐 더 공부를 안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새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밖에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서 잠자고 유튜브보고 웹소설보고 이러고 살았다. 새벽 5시, 6시에 잠들고, 오후 2~3시에 깨고, 가끔 1~2시간 공부하는 척하다가 이도저도 아닌채 시간만 보냈다.

그 사이에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이랑 연락은 다 끊겼다. 그나마 내가 먼저 연락안해도 먼저 연락해서 붙잡아주는 소수의 친구만 남았다. 그리고 살은 10Kg 넘게 찌고 나이만 먹었다.

2.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건 부모님의 한숨 소리, 돈이 떨어짐 그리고 코로나라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기회라니, 누군가는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취업이 안된다는 적절한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코로나가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며 아무것도 안하고 코로나 뒤에 숨으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정부에서 청년들을 위한 각종 지원 정책을 늘렸다.

우연히 알게 되어 먼저 청년 수당을 신청하였는데, 정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 돈으로 토익 공부를 시작했고, 밖에나가서 밥도 먹었다. 그리고 마음상담 정책도 신청해서 현재 내 상태에 대해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냥 계속 걱정된다, 불안하다 이런 얘기를 한가득하였는데 신기하게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말이다. 상담이 끝나고서도 여러 정책에 대한 안내가 계속 톡으로 왔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보고 새로운 정책을 신청했다.

그 후 서울청년포털, 서울시일자리카페, 여성인력개발센터, 청년지원 정책을 알려주는 사이트, 내가 사는 지역의 홈페이지 등등

매일 하는 게 없으니깐 이런 거라도 찾아보고 들락날락하면서 아르바이트, 행사,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계속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무료 청년 소모임도 많이 참석했고 취업 상담도 많이 받았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다.

열심히 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극도 받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것. 이게 5년 동안의 공백기임에도 취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었던 것 같다.

3. 5년 장수생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비결

간단히 말하면, 3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다양한 모임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것이다. 장기간 시험 공부를 하면 안 좋은 점이 자꾸 과거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서운했던 것, 화가 났던 것들... 이런 기억들이 끊임없이 생각난다. 고립되어 가는 거다.

그리고 장기간 돈을 벌지 않으니 가족들한테서도 좋은 소리 듣기가 힘들다. 당연히 관계도 쉽게 나빠진다. 또, 나는 1년차 때 법원직 헌법 강사님한테서 질문하러 갔다가 "너같은 애들은 합격 못하더라"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치유된다고, 다양한 사람들과 각종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갖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이 다시 취업을 도전하는 데 큰 힘을 준다.

두 번째는 앞서 말했듯이 청년들을 위한 각종 정부지원 정책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홈페이지를 매일 찾아가서 각종 소식을 찾아보자. 거기에 내가 해당하는 지원 정책을 찾을 수 있다. 직접 찾아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생각보다 국가에서 청년들을 위해 정말 많이,  다양하게 지원해주고 있다.

세 번째는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마음 상담을 통해 깨달았는데, 면접에 대한 공포가 정말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 그걸 피하느라 장수생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면접 때 "그동안 뭐했어요?" 이런 질문받을까봐 무서웠다. 면접 자리에서 면박당하고 창피를 주면 어떡하지? 두려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내가 구체적으로 면접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을 직시한 이후로는 면접 준비를 더욱 철저히 준비하였다. 공백기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상담 선생님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찾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솔직하게 대답하자였다. 그래서 다른 핑계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냥 얘기했다. 당시에는 내가 시야가 짧아서 그 길만이 답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1줄로 간단하게 대답하고, 내가 지원한 직무에 대해 어필하려는 대답을 더 강조했다. 실제 면접에서 그렇게 답했을 때, 다행이도 면접관들이 그 부분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거나 꼬투리잡은 적은 없었다.


정리하면,

5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면접에 대한 공포를 직시하고,

여러 정부 무료 지원 정책을 통해 도움을 받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나와 같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면,

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사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말도 안하고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취업 후에서도 상당히 문제를 많이 겪긴 했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문제라던가...

말을 덜덜덜 떨면서 하는 문제라던가...

하지만 이런 건 미리 걱정할 만한 일이 못된다.

막상 다 겪어보면 헤쳐나가게 된다.

앞으로 계속 장수생 탈출기를 작성하면서 그때의 고민글도 공유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좀더 상세하게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 땅의 모든 장수생들이 본인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길을 찾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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